여행/16' PARIS

[파리여행] 1일차 인천-파리(샤를드골)/하얏트리젠시에뚜알/파리야경투어/캐리어24인치/파리우버

kazko 2016. 11. 14. 07:17

파리-런던여행 1일차(2016.7.23)

원래 휴가 전엔 업무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법이다. 12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퇴근 후 기차를 타야했던 이 날까지 행사 관련 결재 두 개가 떨어지지 않아서 애가 탔다. 요새 반려가 너무 잦아서 더 그랬다. 실행 품의 올릴 때 그렇게 까다롭게 구셨으니 결과 품의는 좀 살살 해 주라. 나 기차 좀 타자.


 

뭐, 겨우 도착했다. 그래도 제 시간에 도착했고 무사히 여행을 갈 수 있다, 감격해서 여행 짐을 찍었다. 이번 여행을 위해 구매한 캐리어. 24인치냐 28인치냐 고민을 좀 많이 했는데 여름 유럽여행은 24인치, 겨울 유럽여행은 28인치가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24인치를 가지고 가서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28인치는 자신이 없다. 북유럽을 제일 가고 싶어 하면서도. 캐리어 위에 있는 건 5년 전에 받은 생일 선물인데 처음으로 포장을 뜯고 사용했다. 키스캐드슨 도트 파일가방. 여행 계획서와 각종 바우처를 넣었다.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대전에서 급하게 샀던 모자는 저렇게 불편하게 들고갔는데 여행 동안 한 번도 착용하질 않았다.


 

무사히 탑승한 인천공항 행 기차. 하지만 자리를 찾음과 동시에....맙소사.. 본부장님께 인사를 드려야 했다.

 

 안녕하세요 본부장님?(왜 여기 계세요?)

댁에 가시는 길이세요?(왜 하필 이 자리세요?)

저는 이 앞자리에요.(망했다.)

 

 핫팬츠에 발가락 다 드러난 샌들까지 신고 있어서 주춤 주춤 하며 앉았다. 본부장님도 민망해 하시는 눈치였다. 휴가가 시작되는 시점에 괜히 회사 상사를 만나니 방해 받는 기분이 들었다.

비싸게 주고 특실 탔는데 천안까지 의자 한번 뒤로 못하고 90도(체감 각도)로 앉아갔다. 더군다나 중국어 책을 잡고 공부하는 본부장님 앞에서 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괜히 김엄지의 책을 들고 있었다. 왜 내가 척을 하고 있지? 하면서.

인천공항 가면서 기차를 탄 건 처음이었는데 나중에 또 기차를 이용할 것 같다. 버스보다 시간이 덜 걸리기도 하고(버스처럼 휴게소 들릴 일도 없다. 나는 휴게소 들르는게 싫어)​ 기차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바로 올라가면 바로 인천공항 건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하루 두 번, 회차가 많이 없다는 단점만 빼면 만족한다.

 



나는 여기서 내려서 수원으로 가는 기차를 타네.

 

한 시간 반쯤 갔나, 본부장님이 떠났다. 결재가 떨어졌다는 말 다음으로 가장 기쁜 말을 들으며 내 자유시간, 진짜 휴가는 시작됐다. 용산 지나니 거의 승객이 없어서 이 때부터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면서 혼자 놀았다. 이번 여행 기록에 욕심이 좀 있었어서 셀카봉까지 꺼내서 동영상을 찍었다. 가끔 승무원이 지나가며 영상을 찍는 내 옆을 황급히 지나가곤 했는데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만큼 들떠 있었다.

회사 사정으로 여름 휴가 날짜가 조정되면서 한 달 이르게 가게 됐다. 그래서 목적지가 변경된 케이스.

원래는 폴리니를 보러 8월 말에 잘츠부르크에 가려고 했다(폴리니 진짜 잘페 단골에 매번 페스티벌 말미에 나옴). 하지만 회사에서 7월 말까지 모두 휴가를 사용하라는 방침이 내려왔다. 잘츠가 7월 22일부터 시작이긴 한데 사실 보고싶은 리사이틀은 없고, 대안을 찾다가 런던 프롬스를 선택했다. BBC프롬스도 잘츠페스티벌 못지 않게 인기가 많고 프로그램도 화려하다. 다만 프롬스도 7월 말엔 딱히 끌리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보고 싶은 프롬은 9월 정도에나.. 있었다. 가령 두다멜? 하지만 도중에 런던에 가는 다른 목적을 만들기도 했고 겸사겸사 프롬스로 선택해 일정을 짰다. ​

우리는 파리와 런던 9일 일정을 짰다. 인천(0)-파리(4)-런던(3)-파리(1)-인천(1). 출발하기 직전까지 잦은 테러 발발로 가족과 지인들이 너무 걱정을 해줬다. 출발 당일에도 독일에서 테러가 나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찜찜했지만 일단 모든 예약을 취소하기에 금전적인 리스크가 있었다. 그리고 사실 별로 취소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IS는 밤 9시 이후에 행동한다? 라든가, 코란 어플을 다운받아 가면 좋다 라든가.. 이런 얘기만 네이버에서 잠깐 찾아 읽어보고는 출국을 했다.

​처음 유럽에 가보기도 하고, 그래서 12시간 비행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전에 세부에서 돌아올 때 비행기 안에서 죽도록 아팠던 경험이 있어서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 그나마 편한 자리에서 가게 돼서 좀 나았지만 힘들 거라는 예상보단 기내식이 별로였다. 그나마 내 속을 편안하게 해 준건.... 라면.
 


 

 

신라면 하나를 두 그릇으로 나눠 달라고 해서 나눠 먹었다. 양이 딱이었다. 우동이 있으면 좋을텐데 신라면과 신라면 블랙 중에만 고를 수 있다. 라면은 면세점에서도 컵라면 6개 들이 한 박스를 사서 담아갔는데 정말 유용했다. 고추장 튜브 같은 것을 준비하지 못해서 고추장은 어떻게 활용했을지 모르겠지만 라면은 정말 필수품이다. 중간에 런던으로 이동할 때 짐이 너무 많아져서 남은 컵라면 4개를 담을 곳이 없었는데도 소중히 모셔갔을 정도다.

원래도 라면을 좋아하지만 너무나 고마웠던 존재. 원래 내가 촌스러워서 다른 나라 음식에 적응을 잘 못한다. 파리와 런던에서는 그나마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에 들어가면 라면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멋진 기내식 사진은 없고, 나는 그나마 맛있었던 샐러드와, 최고의 라면 한사발을 사진으로 기록.

 

무사히 도착해 파리 샤를 드 공항을 탈출했다. 우리에게 패스트 패스 권이 있었는데 그걸 사용하지 못해서 고생이 예상됐으나 프랑스 입국심사가 너무 간단해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이래서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였다.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프랑스어 이정표에 잠깐 어질했다. 일단 호텔로 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TEXI 라는 이정표만 따라갔다.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다만 공항 택시의 경우 순서대로 타는 것이 아니라, 죽 여러대 서 있는 택시 중에 골라타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택시를 잡는 손님도 우리 밖에 없었다.(오피셜한 택시 탑승장이 아닌가?) 어리버리한 동양인을 쉽게 볼까봐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중앙 쪽에 있는 택시를 탔다. 그 택시를 골랐던 기준은 따로 없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동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였다. 그리고 사이프러스 나무가 눈에 들었다. 이 나무는 프랑스를 여행하는 동안 두고두고 보게 됐다. 고흐 그림 속 어떤 아이템보다도 이국적이라고 느껴졌던 것이 이 나무였는데 눈 한 가득 들어오니 기분이 좋았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하얏트 리젠시 에뚜알로 가는 데 60유로를 냈다. ​

(참고-마지막날 호텔 드 루브르에서 샤를드공항까지는 50유로였다. 시간은 첫날보다 더 많이 걸렸다)​

 

 

 

잘 하진 못하지만 자전거와 달리기에 관심이 많은 나.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데 마침 뚜르 드 프랑스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올해는 7월 2일 몽생미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해마다 출발점과 코스가 바뀌지만 결승점은 언제나 개선문이다. 우리가 파리에 도착한 다음날이 뜨루 드 프랑스 마지막 스테이지였다. 굉장한 볼거리지만 우린 투어 일정 때문에 보지 못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아쉬웠던 점이다. 우리 호텔이 개선문 옆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많이 묵은 것 같다. 대충 봐도 연령대는 다양했다. ​로비에 가득한 참가자들을 보니 신이 났다.

 

 

 

 

우리가 이 호텔을 고른 이유 두 가지 중 하나. 에펠타워 뷰다. 다른 하나는 투어 집결지가 가깝다는 것이다.  

 

커튼을 더 열면 이렇게 탁 트인 뷰가 펼쳐진다. 중앙 쪽에 에펠타워, 화면 왼쪽엔 개선문이 보인다. 개선문과 에펠타워 중간에 보이는 우뚝 솟은 검은 빌딩은 몽파르나스 타워다. 저기 올라가서 야경을 꼭 보라는 추천을 받고 갔지만 가지는 않았다. 아마 에펠타워 야경 뷰가 훌륭한가보다.

전경이 나왔으니 기록. 185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파리 재건, 파리 개조 사업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갈아 엎는 작업이 진행됐다고 한다. 기차역과 주요 광장들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대로가 만들어졌다. 기존 역사적인 건물의 대대적인 수리와 보수가 이루어졌고 그 위용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는 작업들이 진행됐다. 주요 기념물들은 대로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게 해 최대한 시야에 노출되도록 했다. 파리는 총 20구로 나눠져 있다. 1구인지 2구인지 하는 것은 주소를 잘 보면 나와있다. 가이드들이 파리 토목사업에 대해 설명을 참 잘해줬는데 우리 방에서 그런 점들이 한 눈에 잘 보이기도 했다. ​

​우리가 4일간 지낼 방이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너무 낡고 청결도도 낮다) 거의 잠만 잘 건데~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에펠타워 뷰에만 만족을 하고 바로 투어를 나섰다. 9일 간 최대한 알차게 지내기 위해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야경투어에 갈 수 있도록 예약을 해뒀다.(업체:유로자전거나라)

 

 

 

투어는 저녁 8시 노트르담 드 파리 앞에서 시작됐다. 밤 10시에나 해가 지는 시기여서 8시여도 해가 쨍쨍했다. 이 시간에 노트르담 드 파리가 좋았던 이유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건물이 주황빛으로 변했다는 것이였다. 파리 있는 동안 여길 수 없이 지나가게 됐는제 이 시간에 본 성당이 가장 예뻤던 것 같다. 심지어 아침 시간에 오면 이 건물은 그냥 회색빛이다. 건물이 빛나는 시간대를 찾아 가는 것도 여행의 팁인 것 같다.

 

 

꼬마가 인형을 놓은 곳은 쁘앙제로 라는 곳이다. 파리의 정중앙이 여기임을 알리는 하나의 표식이다. 꼬마가 인형을 저기에 놓고 인형 사진을 찍는 모습이 너무 예뻤는데 셔터를 늦게 눌렀다. B컷이지만 너무 예뻐서.

쁘앙제로엔 속설이 있다. 이 곳을 밟으면 파리에 다시 한번 오게 되고, 파리에 살고 있는 사람과 함께 밟으면 파리에 살게 된다. ​

 

 

야경투어에선 성당 내부에 들어가지 않고 성당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었다. ​인원 파악만 하고 곧바로 퐁네프 다리로 이동한다. 한국인 관광객 20여 명과 함께 이동. 노트르담 드 파리를 등지고 조금만 걸어가면 퐁네프 다리가 나온다. 나름 해질녘이라 은은한 분위기가 났다. 파리 건물을 하나하나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워킹 투어라서 첫날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다.

 

 

 

퐁네프의 연인들 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퐁네프 다리. 430년 된 다리다. 여기서 키스를 하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연인들이 엄청 많은 곳이다. 관광객도 많고 현지인도 많은 곳이다. 나는 그것보다 가이드가 설명해준 템플 기사단 이야기가 더 끌렸다.



 

 

퐁네프 다리에 있는 앙리 4세 기마상. 퐁네프 다리를 앙리 4세가 만들었다. 앙리 4세는 당시에 백성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고기를 꼭 먹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왕의 명에 따라 새로운 닭 요리가 만들어졌고 현재에도 꼬꼬뱅 이라는 프랑스 대표 요리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프랑스의 상징이 닭이 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앙리 4세 머리에 닭은 아니지만 새가 앉아있다(?).


 

인증샷은 당연히 찍었고 한동안 석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투어 중간중간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최대한 활용을 잘 해야 한다. 첫날이라 손에 계획표도 들고 있고 공부했던 자료도 들어있고 바우처도 쥐고 다닌다. 둘째날부터는 사라지는 종이.

 

 

 

 

 

 

 

시테섬. 시원한 날씨 덕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에는 현지인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주로 와인이나 술을 마시고 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카페나 식당이 비싸니까 다들 여기 나와서 술을 마신다고 하는데 글쎄? 이런거야 뭐, 한국과 비슷하겠지. 자유롭게 춤을 추거나 연주회를 여는 경우도 봤다. 삶을 즐기며 사는 모습들이다.

 

 

아까 잠깐 언급했던 템플 기사단. 퐁네프 다리 옆쪽으로 내려가면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수장이 화형을 당한 곳이 나온다. 당시 그 수장이 죽임을 당하면서 저주를 퍼부었다는데 그 후로 왕실이 망하고 백년전쟁이 일어나고 흑사병이 돌았다고 한다.(음모론적인 이야기)

 

 

수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가 죽었다는 표시가 ​남아있는 곳이다. 이 날이 유럽에서 가장 저주받은 날이라고 불리는 13일의 금요일이다. 템플 기사단과 스위스의 관계도 흥미진진했다. 금융업도 운영했던 템플 기사단의 문양은 하얀 바탕에 빨간 십자가의 형태였다. 수장이 죽은 이후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그러던 중 유럽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몰려들어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스위스라는 설이 있다. 스위스가 이때부터 형성되기도 했고 스위스 국기가 템플 기사단의 상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금융의 비밀을 지켜주는 나라가 또 스위스. 그리고 현재의 교황청을 호위하는 군대도 스위스군이다.

 

 

 

 퐁네프 다리에 있는 연인으로 추정되는 남자 여자. 여자는 사진을 찍고 남자는 시계를 보네.

 

 

 

퐁네프 다리와 예술의 다리를 건너서 루브르로 이동을 하는데 멀리서부터 아베마리아 가 들렸다. 우리는 처음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틀어놓은 음반인 줄 알았는데 사진 속 여자가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MR을 틀어놓고 건물의 울림을 통해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녹음된 실황음반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훌륭했다. 첫 날부터 자꾸만 이런 감동스러운 장면을 만나니까 다 담기에도 벅찼다. 이후에도 길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예술가와 예술팀들은 상상 이상의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가지고 거리의 관객을 만났다.

 

 

루브르 입성.

 

 

 

​아 지금 봐도 너무 예쁜 루브르 피라미드다. 저 너머 분홍빛으로 물든 석양을 배경으로 은은한 빛을 내고 있는 자태가 정말 아름다웠다. 사실,직접 보기 전까지, 나는 한번도 루브르의 피라미드가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하지만 직접 보니.. 정말 달랐다. 미술관의 다양한 부속 건물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디자인 된 곳이라고. 중국 출생의 미국인 건축가가 지었다. 지하 공간으로 빛이 잘 비추도록 돕고 있다. 그리고 루브르 건물에 보다 현대적인 분위기를 부여했다. 당시에는 그래서 루브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가이드의 전략으로 루브르 앞 쪽으로 입장하지 않고 뒷쪽으로 들어간다. 한 눈에 피라미드가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첫인상을 강하게 남기기 위함이다.

 

 

 

넓은 중앙 정원을 파서 그 안에 커다란 로비를 만들었다. 다음날 루브르 투어에서 이 피라미드 아래의 공간을 만나게 되는데 생각보다 훨씬 채광이 좋아서 감탄한 기억이 난다. 피라미드 주변으로 분수대도 있어서 피라미드가 내뿜는 조명이 물에 반사된다.

내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마지막 코스인 에펠타워로 향했다.​

 

 

에펠타워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광경. 타워를 배경 삼아 브루스를 추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때가 10시 반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주말이어서 즐기는 건가? 아니면 피서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사람들이 흥에 겨웠나? 평소에도 여기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한다. 퐁네프 다리보다도 훨씬 로맨틱한 곳이다. 나는 어떤 파리 건축물보다도 파리지앵들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와인 한 잔을 하고 에펠탑 야경을 감상했다. 호텔방에서 멀리 보이던 에펠탑이 눈 앞에 있었다. 세계 관광객을 설레게 하는 최고의 관광 상징물.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이 날은 독일국기 색깔로 점등이 돼 있다. 이날 독일에서 테러가 나서 인명피해가 있었기 때문에 추모의 조명이 밝혀진 것이다. 그래서 11시와 12시에 진행하는 반짝반짝 조명 타임도 진행하지 않았다. 얼마전 파리 니스 테러가 있었던 날은 프랑스 국기 색깔로 조명이 세팅됐다.

에펠타워 야경을 보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여행 하는 동안 우버를 이용하기로 해서 여기서 우버를 불러서 곧바로 호텔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