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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슈베트르-리스트: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Arcadi Volodos 아르카디 볼로도스 연주

출처: DTA 프로젝트 그룹 (약 1600년에서 1900년대의 독일어 텍스트들을 집약 연구하고 있다)

 

 

"발트호른 주자의 유고에 의한 시집"

 

빌헬름 뮐러가 1820년 완성해 낸 이 시집을 읽고 슈베르트는 1824년에 1부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그리고 1827년 서른이 되던 해에 2부 겨울 나그네의 연가곡집을 완성했다. 그 후 슈베르트는 이듬해 1828년, 서른 한 살의 나이로 빈에서 죽는다. 슈베르트의 절친이던 요제프 폰 슈파운은 슈베르트가 이 두 작품을 작곡하면서 흥분에 빠져 있었던 것이 그의 이른 죽음을 부채질했다고 회고했는데 이안 보스트리지는 자신의 책 '겨울 나그네'에서 이를 반박했다. 보스트리지가 책에 실은 <테아터차이퉁> 신문에 실린 당시 1828년 3월 29일자 평을 보자.

 

- 슈베르트 정신은 어느 곡에서든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꽉 휘어 잡고, 인간 영혼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경험하게 하여 아득히 먼 곳으로 이끈다. 그곳에서 청자는 장밋빛 광채로 아른거리는 무한한 힘의 전조를 실감하지만,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예감의 짜릿한 행복에는 실존의 경계에 둘러쳐져 있는 갑갑한 현재의 순한 고통이 뒤따른다. (출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이안 보스트리지 저, 바다출판사)

 

이 작품들의 진가를 당대에서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 연가곡의 숭고함을 제대로 알아보고 관심을 가졌다는 것. 나는 보스트리지에 동의한다. 이 작품들은 슈베르트 사후에 수수께끼처럼 풀린 비운의 작품일 수 없다. 뮐러의 시는 아름답고, 슈베르트는 그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해석해 냈으며 그렇게 완성된 작품 역시 궁극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가슴에 무언가를 턱 막히게 한다. 당시 사람들이 그걸 느끼지 못했을리 없다. 어찌됐던, 뮐러의 자전적인 작품에서 그 좌절된 사랑은 그의 시로, 또 슈베르트의 예술 가곡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낭시는 아름다움이란 순간적인 동시에 영원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영원함'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는다고 했다. 낭시의 정의를 이 작품에 부치고 싶다.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가곡이라고 열심히 적었지만 사실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이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리스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했는데 우선 제19곡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내용부터 살펴보겠다.

 

 

 

 

물방앗간 젊은이

 

진실한 마음이 사랑으로 스러질 때,

화단마다 피어 있던

백합들도 시들고,

 

행여 그의 눈물

보일까,

보름달도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그땐 천사들도

눈을 감고,

흐느끼며 노래 불러

그의 넋을 잠재운다네.

 

 

시냇물

 

사랑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별이, 새로운 별이

하늘에서 반짝이면,

 

붉고 흰

세 송이 장미가

가시 돋친 가지에서 피어나

다시는 시들지 않아요.

 

그러면 천사들도 날개를 접고,

매일 아침

땅으로 내려오지요.

 

 

물방앗간 젊은이

 

아, 냇물아, 사랑하는 냇물아,

너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구나:

아, 냇물아, 그런데 너는 아니,

사랑이 이다지도 괴로운 것을?

 

아, 저 아래, 개울 밑에

달콤한 안식이 있구나!

아, 냇물아, 사랑스런 냇물아,

자장가나 불러 다오.

 

 

(출처: 겨울 나그네, 빌헬름 뮐러 저, 김재혁 옮김, 민음사)

 

 

 

 

달뜨게 방랑을 출발했던 청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에 실패하고 괴로워한다. 물방앗간 아가씨를 사랑했지만 아가씨는 사냥꾼과 눈이 맞고 말아, 그에게는 사랑을 이룰 기회가 사라진다. 죽음을 결심한 청년 옆에 시냇물이 흐르고, 그 시냇물은 청년에게 상냥한 말을 들려준다. 사랑이 고통에서 벗어나 별이 되면 세 송이 장미가 영원히 지지 않는다고. 아가씨를 욕망하는 감정의 결과는 죽음이고 완전히 대체불가능한 그 사랑에서, 시냇물의 말에 기대어 안식을 찾는 청년에게서 우리는 낭시가 말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뮐러의 시만으로도, 슈베르트의 연가곡 작품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음향의 만다라를 향하고자 했던 리스트는 자신의 해석을 더 얹었고 볼로도스는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다. 죽음을 결심한 마음은 결코 우발적이 아니며 그가 원하던 안식을 시냇물이 펼쳐 보여주는 청년의 감정이 새로운 맥박을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비록 그 맥박이 죽음을 향한 것이라 해도 우리를 저 경계 너머 안도의 세계로 인도한다.

 

샹트 페테르부르크 태생의 볼로도스는 호로비츠의 프로듀서였던 노마스 프로스트와의 인연 때문인지 제2의 호로비츠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볼로도스는 제2의 누구가 아닌 것 같다. 청년이었다가, 시냇물이었을 그는 이 한 곡으로 듣는이의 숨을 빼앗을지도 모른다.

 

 

 

 

 

Schubert-Listz 슈베트르-리스트: 물방앗간 젊은이와 시냇물 Arcadi Volodos, Arcadi volodos 아르카디 볼로도스 연주